본문 바로가기
이슈

세월호 7주기, 세월호 사고 총정리 (+ 침몰 원인)

by Richard Min 2021. 4. 16.
반응형

세월호 7주기, 세월호 사고 총정리 (+ 침몰 원인)

 

 

 

 

2021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7주기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인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해 승선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고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난사고 중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 사고 이후 세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재난 사고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당시 모든 사람들을 일순간 멈춰 세운 사건이었습니다.

 

그중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 버린 사건이었는데요.

 

 이 참사로 인해 당시 출범 2년 차였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사회계, 정치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습니다. 이후 언론, 정계, 경제계, 교육계 그리고 문화계에서 수많은 갈등을 야기한 증폭제 역할을 하는 사건이 되었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남영호 침몰 사고 같은 대형 재난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인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참사는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및 교직원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발생하면서 사망자의 90%가 같은 학교 소속, 83%가 미성년자였습니다.

 

단원고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은 이 사고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고 당일, 세월호에는 차량 150여 대와 승무원 29명, 화물 기사 33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반복되어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위 말 잘 듣는 학생들이 죽는 결과가 되어 안타까움과 공분이 더 컸습니다. 이 방송은 누가, 왜 했는지, 이후 탈출 지시는 왜 안 했는지 등등이 핵심 쟁점 중 하나였죠.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재난사고에서 방송이나 담당자의 말을 불신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정부 측 인사인 해경 123정 정장, 경위 김경일의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가 대법원에 최종적으로 유죄로 결론 났어요.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인 9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한, 해경에서 간단하게 대피 방송만 했어도 인명피해가 극심하지 않았을 거란 법원의 판단이며, 부실한 구조 행위로 대량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7년 전 세월호 참사는 단지 배 한 척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뒤집어진 우선순위로 돌아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 소속의 배였죠. 그 회사는 당시 인천과 제주 사이 항로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여객선보다 화물선에 가까웠어요. 침몰 당시에 세월호에는 승객 470여 명과 2400톤 이상의 화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안전 기준에 따르면, 이 2400톤의 절반은 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청해진해운에는 세월호와 쌍둥이배라고 불린 오하마나호도 있었습니다. 세월호에 실린 화물 2400톤 중 700톤은, 4월 15일 오하마나호 선장이 더 실으면 가라앉는다고 항의하면서 항구에 두고 간 화물이었는데요.

 

결국 세월호는 자리도 없는데 급하게 화물을 더 실었습니다. 화물이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고정하는 장치들도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었어요.

 

또, 세월호는 이미 일본에서 18년간 운항된 낡은 배였습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중고로 싸게 사 와서 마구 불법 개조했죠. 화물을 더 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는 구조적으로 왼쪽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세월호는 참사 발생 몇 달 전에도 바람이나 파도로 항해를 중단해야 할 만큼 왼쪽으로 기운 적이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세월호를 두고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배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침몰 전날인 4월 15일은 안개가 잔뜩 끼고 날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제외한 다른 배들은 출항을 포기했죠.

 

하지만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출항을 강행했습니다. 이 점도 세월호에 실린 화물과 그리고 정부 정책과 연관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 문제예요.

 

 

 

 

세월호는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자재 운송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급하게 사 와서 개조한 까닭도 다른 선박회사들보다 먼저 뛰어들어 물동량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때 이명박 정부는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줘 선박회사들을 지원해 줬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부 정책과 이윤에 눈먼 기업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은 뻔하죠.

 

온갖 유착과 부패가 일어났습니다. 청해진해운은 2013년 한 해 동안 직원 안전 교육에는 겨우 54만 원을 쓴 반면, 선박 중간검사나 정기검사 때는 뇌물로 300만 원씩 썼다고 합니다.

 

 

 

 

예컨대 인천항만청의 한 간부는 3500만 원과 양주 3병에 세월호 허가를 맞바꾼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에서는 징역 5년과 벌금 7000만 원이 선고됐어요. 다른 간부들도 돈과 접대를 뇌물로 받았다는 증거가 많았고, 증거 조작 시도도 발견됐습니다.

 

그런데도 2016년 초 대법원은 1심 선고를 완전히 뒤집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저 청해진해운에 속았을 뿐이라는 것이었는데요. 터무니없는 판결이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 정부의 대표적인 친제국주의 정책의 하나입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투사하기 위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 계획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제주 해군기지는 김대중 정부 때 논의되고, 노무현 정부 때 결정됐으며 이명박 정부 때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제주도민을 비롯해 평화 운동, 환경 운동 진영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2014년 4월 당시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시공업체에 3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물어 주고 있었어요. 이것이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출항을 강행한 이유였습니다.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 발단은 조타기, 쉽게 말해 핸들 고장이었습니다. 정상적인 배는 아무리 급하게 방향을 최대로 꺾어도 10도 이상 기울면 안 되는데요. 세월호는 비정상적인 배의 구조와 화물의 이동으로 금세 20도 넘게 기울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쏟아져 내린 것이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이었습니다. 그 무게는 400톤 이상으로, 승객 5000명에 해당하는 무게였어요.

 

요컨대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의 선적은 침몰의 가장 주된 원인으로, 선박 허가나 구조 문제뿐 아니라 침몰의 원인 자체에 국가가 책임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조 실패와 국가의 총체적 책임 회피


 

 

 

배의 침몰만큼이나 많은 의구심과 충격을 일으킨 것은 바로 국가의 구조 무능 또는 실패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은 이 문제의 상징이죠. 학생들은 선내에 전기가 꺼지고 공기압이 터져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순간 직전까지 가만히 대기하라는 방송 지시를 들었습니다.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의 영상이나 문자 메시지 등을 종합하면, 선내 방송을 듣고 피해자들은 배가 기울어 침몰하는 상황에서 대거 이동하면 침몰이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압도적 무게의 화물이 쏠려 배가 침몰 중인 상황에서는 한시바삐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였죠.

 

 

 

 

문제는 구조에 책임 있는 자들, 선박 안전사고 시 대처 방법을 잘 알아야 하는 자들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선원들조차 배가 기울자마자 탈출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가만있으라는 방송을 거듭 들으면서 해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렸지만 정작 출동한 해경 배는 123 정이라고 하는 고작 100톤짜리 한 척이었습니다. 123정에는 의경 몇 명을 포함해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타고 있었죠. 소형 헬기도 몇 대 왔지만 서해의 더 큰 배, 더 좋은 설비의 헬기들은 중국 어선 단속에 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100분 만에 정말 침몰했는데, 123정이 도착했을 때는 그 100분 중 45분이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세월호는 123정이 도착한 시점 즈음부터 더 빠른 속도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23정은 도착해서 정확히 30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30분 후 처음 한 일은 연락이 닿는 선원들한테 가서 그들을 꺼내 준 일이었어요.

 

그리고는 9분 만에 100미터 밖으로 후퇴했습니다. 90도 이상 기울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보고하면서 말이죠. 그때 단 한 명이라도 학생들에게 나오라고 외쳐 줬다면 어땠을까요? 

 

선원이나 경찰 개인의 이기심, 직업의식 결핍 등만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이라는 시스템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부의 우선순위는 대중의 안전에 있지 않았습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해양 사고가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며 구조·구난의 많은 부분을 신자유주의적으로 민간에 맡겼습니다. 뒤이어 박근혜 정부도 집권 첫해에만 600개 넘는 규제를 없앴어요.

 

결국 예산 부족 때문에 인명 구조, 수난 구호 명령, 선박 좌초·전복 대처를 담당하던 지방 해양경찰청 수색 구조계가 없어졌습니다.

 

참사 때 출동한 123정 대원들은 선박 침몰 시 구명볼을 던져 주는 훈련만 해 왔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일단 사람이 물에 빠져 둥둥 떠 있는 상황에만 대비했죠. 이런 123정이 침몰하는 배와 수백 명의 피해자들을 멀뚱멀뚱 보는 사이에 윗선의 명령과 지시는 전혀 구체적이거나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해경 본청과 서해청은 중앙과 광역까지 나서서 상황 지휘를 하면 통신망에 혼선이 생긴다며 일선으로 책임을 미뤘습니다. 목포서는 선장이 판단하게끔 하라거나, 123 정장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청와대는 빨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에만 열을 올렸어요. 배는 빠르게 기울고 있는데, 지시받지 않은 행동을 했다가 어떤 덤터기를 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도 나도 책임을 미루기만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 구조 방기는 국가 기구들의 총체적인 책임 회피 방식과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였죠.

 

 

 

 

세월호 7시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는 침몰에 대해 첫 보고를 받은 지 무려 7시간 만에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박근혜는 머리를 올리고 최순실 등과 비밀회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탄핵 확정 위기에 처해 있던 2017년 1월 1일 이렇게 말했죠.

 

"나는 바쁜 사람이에요.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이런 질문과 그 속에 담긴 분노는 참사 이후 정부가 벌인 일을 보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을 모욕하고 발 빠르게 항의 운동을 탄압하고 책임자 규명과 처벌을 가로막았어요.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한 수작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운동 감시와 탄압은 참사 당일의 무책임·무관심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전반적이고 일상적인 우선순위 자체가 대중의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국가 관료 자신을 포함한 지배계급과 그들 중심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문재인 4년과 세월호 약속 배신


 

 

 

세월호 참사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숱한 악행들은 결국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광화문 중심부의 세월호 광장을 수백만의 촛불 행렬이 휘감았죠.

 

결국 박근혜 정부는 중도하차해야 했습니다.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구속됐고, 세월호 선체가 드디어 인양돼 뭍으로 올라왔어요.

 

이후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를 내세우며 들어섰습니다. 집권 초 문재인 대통령은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하나도 없게 하겠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세월호 참사 이후 7년 중 4년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지나갔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요? 문재인 정부의 번지르르한 세월호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눈물짓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그들은 찬 겨울에 청와대 앞 농성을 하고, 집단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세월호 문제 해결이 멈춰 있다는 사실은, 2014년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뤄진 검찰의 수사 결과와 그에 따른 법원 판결이 멈춰 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2014년 참사 직후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검찰 특별수사팀은 침몰 원인, 구조 방기, 해운 비리에 관한 수사를 흐지부지 종결시킨 바 있죠. 지독하게 부실하고 부당한 수사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검찰 수사의 지휘 라인 인사의 상당수가 문재인 집권 후에도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이들은 앞서 노무현 정부 하에서, 특히 문재인이 당시 민정수석일 때 주요 직책을 맡으며 그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는데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 서울 중앙지검장 이성윤입니다. 그는 2014년 검·경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세월호 적폐 수사 전체를 이끌었죠. 이성윤은 추미애 사단의 대표주자로, 문재인 정부가 주야장천 외친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검찰 개혁의 기수로 나서 왔습니다.

 

 

 

 

한편, 한국선급 해운비리 수사팀장 배성범은 조국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 등이 있었던 2019년 말까지 서울지검장을 지냈습니다. 문재인 청와대와 추미애 법무부의 검찰 개혁 인사 칼바람이 불고 난 뒤인 올해 1월, 검찰 특별수사단은 세월호 참사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는 유가족이 처벌하라고 요구한 책임자 78명 대부분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불구속 기소된 해경 지휘부 10명조차 2월 법원에서 전원 무죄 및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결국, 세월호 구조 방기 혐의로 처벌된 사람은 아직도 123 정장 단 한 명뿐입니다.

 

 

 

 

서예지 학폭 충격적인 논란 총정리 (+ 김정현 서현 학력위조 갑질)

서예지 학폭 충격적인 논란 총정리 (+ 김정현 서현 학력위조 갑질) 배우 서예지가 전 연인 김정현 조종 논란에 이어 학력 위조 의혹, 학교 폭력 의혹, 스태프 갑질 등 인성 논란까지 휩싸였습니다

nuaxo.xyz

 

학교폭력 실태조사 참여방법 총정리 (+ 학교폭력 실태조사 바로가기)

학교폭력 실태조사 참여방법 총정리 (+ 학교폭력 실태조사 바로가기) 4월 30일까지 2021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가 실시됩니다. 실태조사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nuaxo.xyz

 

코로나 19 노바백스 백신 접종시기 및 장단점 총정리 (+ 가격 대상 효과)

코로나 19 노바백스 백신 접종시기 및 장단점 총정리 (+ 가격 대상 효과) 국내에서 생산되는 첫 코로나 19 백신인 노바백스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백신 확보를 위해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

nuaxo.xyz

 

반응형

댓글0